2007년 8월 19일 일요일

Imagine Cup 2007 다녀와서

어익후
2달 만에 포스트다

괴덕판이 완전히 버려진듯 싶다-_-;;
나름대로 하는일 없이 바쁜티만 내고 다닌 것 같다.

MS사의 초청 덕분에 일반 공개가 아닌 Imagine Cup 2007 행사에 참석 할 수 있었다.
(초청해 주신 MS사 분들 감사합니다!!)

지난 8월7일, 8월9일과 10일에 있었던
Embedded 부문과 Software Design부문 EXPO와 Final Presentation을 보고 왔다.
역시, 직접 보는 것과 간접적으로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가장 큰 부분은 무엇보다 직접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영국, 포르투칼등 각국에서 오신 심사위원 분들에게 심사 주안점과 뛰어난 작품에 대해서 물어보고,
Software Design부문에서 1위를 한 받은 태국팀과 태국팀의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등에 대해서 물어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Imagine Cup의 구성원-세계 각국에서 온, IT와 사회에 대한 열정을 지닌 수많은 사람들-과 직접 마주하고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배울 수 있는 정말 멋진 기회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특이한 몇 가지 작품들에 대해서 소개한다.
참고적으로 2007년 Imagine Cup의 주제는 교육Education이었다.


인공호흡 교육 기구 (Embedded 부문)


다른 인공호흡 교육 기구들과 달리, 압력측정 등을 통해

"제대로 인공호흡이 되는 것인가?"

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 있는 교육이 가능하다.









점자 디스플레이(Embedded 부문)




사진에는 잘 안보이지만, 가운데에 검은색 네모 박스가 디스플레이어다.

일반 모니터 화면처럼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디스플레이어로서 인도팀의 작품이다.








아기 울음소리(또는 옹알이) 번역 프로그램(Software Desgin 부문)



아기의
울음소리(옹알이?) 번역 프로그램.

실제로 이런 번역이 가능하다고 논문을 보여주던데, 논문 제목이 무엇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메모를 했어야 했는데 아흑아흑ㅜ

(그런데 과연 진짜로 이제 더 이상 아기의 울음소리에 잠을 설치는 일은 없게 될 것인가!?)


2008년 대회는 "환경Environment"라는 주제로 프랑스에서 개최된다.
여담이지만, 실제로 이메진컵을 통해서 투자를 받고 창업한 사례들이 상당히 많다.
도전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대회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내년 대회에서도 혁신적인 작품들이 더욱 많이 탄생하기를 기원한다.

2007년 6월 3일 일요일

촌놈의 미국 기행!

미국 New Mexico주 Albuquerque에서 열렸던 Intel International Science and Engineering Fair에 다녀왔다;

벌써 2주나 지난 일이다 하핫;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1cm도 나가본 일이 없었는데,
첫 해외 여행을 미국으로 다녀오다니 나도 참 운 좋은 케이스다.

혼자서 신용카드가 없어서 직접 숙소들로 전화해서 예약해고
가장 싼 표를 구하다보니 결국 3번 환승하는 표를 손에 쥐고 혼자 다녀온 미국.
진짜 누구말 맞다나 '개념없는'짓으로 다녀왔지만,
나름대로 Albuquerque옆동네 Santa Fe도 혼자 다녀오고 그 지역에서 다녀올만한데는 다 다녀본거 같다.


비싼 돈 주고 다녀왔지만, 그만큼 많이 배운거 같다.
뭐랄까, 그리 오래산 인생은 아니지만,
새로운 도전을 찾았다.


가진 것이 없기에, 더욱 과감하게 도전 할 수 있지 않을까.
도전의 결과가 보여질 1년 후에, 내 모습을 기대한다.
과연 어떤 모습일지. 스스로 기대되는.

2007년 4월 21일 토요일

2차 CCK 발룬티어 모임을 다녀와서

2차 모임이지만, 너무 늦게 지원해버린 내게는 첫번재 모임이었다.

오래간만에, 학교에서 나와서 그 물 좋다는 강남!으로 갔는데,
어느 곳이던 구경하고 지리익히는 것을 좋아하는데,
1시간 걸린다는 버스가 2시간 가까이 걸려서 급하게 이동하느라 구경을 못했다.

아무튼,
오래간만에 만나뵌 류 선생님, 그리고 20명 가량되는 선생님들 앞에서
이번 모임에서는 추태를 안보일까 했었는데,
역시나-_- 였다.
아무래도 술과 나의 인연은 고교때로 끝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음 모임에는 무려! 조PD님이 오신다니, 꼭 참석해야겠다 (응? 리윈군 왜이러시나)

Creator.
"수 많은 전문가 선생님들께서 계신데, 이제 막 알에서 깨고 나온 햇병아리가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오면서 들었지만, 다른 선생님들 처럼 나 역시 CCL을 좋아한다.
예전에 다른 과학 분야들과의 연구를 통해서, 지식의 "공유"와 서로 다른 분야와의 "협업"이 갖는 엄청난 효과를 체감해보았기 때문에, 그러한 새로운 창조의 바탕을 만들어 주는 CCL을 너무나 좋아한다. (과학적 지식의 창출지인 학회조차도, 상당히 폐쇠적인 편이다.)
이번에 준비하고 있는 논문을 가능하다면 (학회 규칙이 있겠지만) Creative Commons License로 발표하고 싶을 정도로 좋아한다.


기존 지식을 통한 새로운 창조.
SCI 학회지나 논문의 영향력을 표현하는 Impact Factor 역시 "피인용"성적이다.
다시말해 숨겨진 지식은, 도움을 주지 못하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얼마전에 Devpia A&D Eva리더이신 손영수형의 블로그 포스트를 통해 말씀하신 것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나로선, 이번 CCK 발론티어에 꼭 어떤 방식이던 도움을 드리고 싶다.

다음 모임때까지 좀더 생각해봐야겠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PS1. 아직 정신이 제대로 없어서 두서없이, 정신없이 썼다. 정신차리면 정독하고 수정 좀 해야 할거같다.
PS2. CCK에서 뵌 분들은 왜 모두 동안이실까??? IT업계분들에게만 내려오는 무공비젼이라도?
메모1.학교에서 정문에서 길건너서 9200번(운임은 2200, 노선은 강남,교대,양재역!)을 타고 갔음

2007년 4월 15일 일요일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작고하신 故정운영 교수님의 말씀으로 알고 있었으나,
사실 맑스주의자였던 에르네스트 만델의 말이란 것을 알게되었다.

난 엔지니어기 때문에 이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에르네스트 만델이 처음 이 말을 한 이유, 배경사상등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

그러나, 이 말은 내게 큰 가르침을 주었다.

어찌보면, KAIST에서 있었던 특강때
정운영교수님이 하신 강의 내용에 더 큰 감명을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것은 아무래도 좋다.

이념에서 좌익이던 우익이던
최근 각광받는 잘나가는 BT, IT, CT등의 이른바 T시리즈던
중요한건 '휴머니즘, 인간애'이다.

유비쿼터스 블루투스 그런것은 아무래도 좋다.
본질은 '인간애'이다.
인간은 단순 '상품 구매자', '돈주머니'가 아니다.

진정으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엔지니어들과 사업가가 해야 할일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의 사명은 이윤추구라는 것에 대해서 반대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이러한 기업과 엔지니어들에게는 철학이 필요하다.

기업가이고 엔지니어이기 전에, 인간이며, 사회의 구성원이다.
진정으로 인간을 위한 것이 어떤것일지에 대한.
"휴머니즘. 인간애"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필요하다.


"사람의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2007년 4월 7일 토요일

TOP 10 - 내 인생의 스승분들



MSP를 준비하면서, 여러가지 나만의 TOP10을 적어보았다.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책등, 그리고 명언들을 쭉 기록해봤다.
그러던 중, 문득 어떤 분의 메일 서명인 '만나는 사람 모두 우리의 스승이다' 생각이 났다.
그 메일 서명이 기억 나는 순간,

나는 내가 잊고 있던, 내게 영향을 주신 모든 분들을 기억해보기로 했다.
난 이 글을 통해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내가 언제나 기억하고 있는 부모님을 제외한,

내게 영향을 주신 그 분들께 드리기 위해ㅡ
그리고,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한 반추하기 위해ㅡ

내 기억에서 잠시 잊었던 모든 분들을 찾아보고자 한다.


1. 오진식형
지금 부경대학교 생명공학과에서 재학중이며, 곧 POSTECH에 진학할 예정인 식이형
평범했던 '나:이동훈'을 처음 과학 분야쪽에서 활동 할 수 있도록 '발굴' 해준 오진식형.
진식이형이 내게 영향을 준 것은 한두 부분이 아니었다.
과학쪽 분야와 관련한 부분부터, 노래방스킬(?)까지였는데,

- 더욱 넓은 세상을 보여줘서, 일찍부터 연구활동과 논문발표를 하게된 것

- 서로 다른 분야의 만남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것을 배운것도

- 대중들에게 '과학'을 다가가게 해야만, 대중들이 '과학'을 알아야만,
진정으로 과학이 '사람'을 위한 학문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르쳐 준 것도

- 편협해지지 말고, 끝 없이 새로이 도전해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 것도


위의 다소 무거운(?) 영향들 외에도
- 진식형처럼 노래 잘 부르고 싶어서 노래방 자주 가게 됐다는
아주 지극히 평범한 영향도 있다.

내가 지금까지 새로운 세상을 접하고 스승분들을 만난 길을 갈 수 있게 해준, 가장 큰 영향을 준 오진식형.
과학도에게 '마인드'는, 그 과학도의 '심장'이나 다름없다.
그 심장을 내게 준 오진식형을, 내 인생의 가장 큰 스승인 형을 TOP에 올린다.


2. Dale Carnegie(데일 카네기) 선생님
내가 읽어본 책들 중에서, TOP10에 1,2위를 다투는 책은
카네기 인간관계론(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이었다.
중학교 시절, 친척어른께서 주신 '당신이 리더다'라는 책은 카네기 인간관계론에 기반한 책이었는데, 그 책을 읽는 순간,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책에 형광펜으로 밑줄과 수많은 메모들을 하며 읽었다.

- 한 해당 2백명 가량의 회원이 있는 제주도 고교 컴퓨터연합서클 '제로하나'의 회장을 맡게 된 것도, 이끌어 나갈 수 있었던 것도

- 내성적인 성격과 몇몇 사건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비교적 무난한 인간관계를 이어올 수 있던 이유도


모두 이 카네기 선생의 책 덕분이었다.
지금까지, 이 책은 내 성경이나 다름 없는 책이다.
삼국지를 제외하고 내가 가장 많이 반복해서 읽은 책이고,
언제나 이 책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노력하고 있다. [물론, 잘 되지는 않지만]

비록 작고하신지는 오래되셨지만,
선생님의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은 내 신념과 뜨거운 가슴을 전달하는 법을 가르쳐주신 스승이다.
선생님께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드리고자 한다.


3. 오홍식 교수님
일반적으로, 일반인문계생은 교수님께 지도 받기가 대단히 힘들다.
과학고 학생들처럼 R&E(Research and Education) 제도를 통해 교수님 Lab에 들어가 연구에 참여 할 수도 없다. 답장메일은 기대조차 할 수 없는 형편에서, 자신의 연구과제에 지도나 조언을 받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교수님들께서는 바쁘셔서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오홍식 교수님은 다르셨다.
교수님께서 바쁘신 와중에도 꼭 3일 내에 회신을 주셨으며, 필요하다면, 개인사사까지 해주셨다.

제주대학교 생물교육과 오홍식 교수님을 내가 처음 뵌 것은 과교총에서 개최하는 과학실험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생물교육과에서 지도 받을 때였다. 당시 나는 한창 동물학과 컴퓨터 과학의 연계 논문을 동료와 준비 중 이었는데, 그때의 인연을 시작으로 난 고등학생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교수님께 사사를 받을 수 있었다.
왠만한 대학생들보다 오랜 시간 교수님과 면담하고 사사 받았다.
교수님의 명의로 제주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수 있었으며, 한국에서 흔치 않은 동물행동학 전공자이신 교수님께 동물학에 대해서 거의 개인 교습을 받았다.

난 단순한 동물행동학적 지식(Knowledge) 뿐만 아니라,
- '진리의 탐구자'인 과학도가 가져야 할 마인드에 대해서도 배웠다.

이러한 결과,
- 나는 2006 MS Imagine Cup 고등부 대상이라는 영애를 얻을 수 있었으며,

그 이후에도 교수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실제 아프리카 기아 해소에 도움을 주고자 시작한
- Livingston's Beetles프로젝트를 할 수 있었다.

과학도에게 '마인드'가 그 과학도의 '심장'이라면,
과학도에게 '연구에 대한 신뢰와 지지'는, 그 심장을 뛰게하는 '혈액'이다.
오진식형과 마찬가지로 내게 '심장'을 주셨으며, '혈액'을 주신
나 이동훈의 제 2의 아버지이신 오홍식 교수님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4. 류한석 선생님
2006 MS Imagine Cup때 심사위원으로 처음 뵙게된 류한석 선생님.
내가 류한석 선생님을 직접 뵌 것은 몇번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류한석 선생님의 글들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선생님의 Peopleware 블로그에서 처음보게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피플웨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다"라는 말은
내가 지금까지 다른 과학분야와 IT분야에서 해오던, 단편적인 생각의 조각들을 정리하는 '열쇠'가 였다.

인류에 기여할 천재들을 발굴한다는 취지하에 시작됐지만
단순한 문제풀이에 급급하게되버린 어떤 대회들 부터,

인간의 삶에 보탬이 되게 하겠다며 작성되었으나
학계에만 잠들어 있는 수 많은 과학과 IT분야의 논문들,

인간을 위한다는, 정확히 말해 인간의 '편의'를 위한다는 유비쿼터스가
인간 감시와 통제의 선구자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느껴온 생각의 조각들을

류한석 선생님의 '열쇠'를 통해
- 진정으로 '인간'을 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 그리고 내가 목표해야 할 것은 어떤 것인지를 배웠다.


또한, 단편적인 단면 밖에, 한 분야밖에 볼 줄 모르고,
안된다고, 세상이 이상하다고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편협한 과학도 또는 코더 대신
- 더욱 넓게 보며 앉아서 사유하기 보다는
- 그 일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가서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학도의 '심장'과 '혈액'을 가진 나에게
내가 가진 신념을 세상에 펼치기 위한 '두뇌'를 주신 류한석 선생님.
선생님께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
지금도, 류한석 선생님의 블로그는 내 즐겨찾기 1순위이다.



5. 신윤지
누구나 사람에게는 방황하던 시기가 있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으며, 오히려 남들보다 조금 그 기간이 길고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다.
"너만 보면 인생이 짜증난다, 무슨 생각하고 사는거냐"라는 말을 수시로 듣고 살았고,
학생이 해서는 안되는 여러가지 일을 한 적도 있었다.

- 그런 시기에 날 잡아준, 힘든 시기에 날 바로 설 수 있게 바로 잡아준 사람이자,

내가 지금까지 삶에서 가장 큰 영광 중에 하나인 Imagine Cup을 수상 할 수 있도록,
- 자신의 '기회'까지 포기해 가며 도와줬으며 신념을 찾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준 사람이다.

지금까지도, 여러 말도 안되는 역경들 속에서도 꿋꿋히 定道를 걷는 그녀는
- 내게 진짜 '의지'란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주는 스승이다.

가장 위험한 시기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준 나의 스승이자,
나의 친구이자 애인인 그녀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6. 김도원, 서기호, 지장운
2006 Imagine Cup 이후, 나는 LAPSTA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실제로 아프리카의 기아 해소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려고 여러가지 시도를 했었다.
그렇지만, 당시 나에게는 '의지'하나만 있었으며, 그 '의지'마저도 '두려움'과 '의심'에 의해 흔들리고 있었다. 해결 불가능한 쓸데없는 일에 인생을 인생을 허비하는 것이 아닐까, 괜한 짓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등의 '두려움'과 '의심'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커져만 갔다.

그러나, 신념을 같이 하는 동료인 이들은,
KAIST의 바쁜 일상 속에서도 risk를 줄여나갔으며, 내 신념을 굳건히 해주었다.
부족함이 많은 나에 비해, 강력한 통찰력insight를 가지고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바쁜 일상에도 연구팀을 총괄, 투철한 책임감을 보여준 김도원
실제 업체의 지원을 이끌어내는데에 자신의 방학을 두번이나 포기해 가며 함께한 서기호
얼굴 한번 본적이 없음에도 참여하여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는 지장운

- 이들은 내 의지의 스승들이자, 내 신념의 정신적 지주들이다.

내 든든한 동료들이자, 스승이며 정신적 지주인 이들.
엄청난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이들을,
친구이기 이전에, 난 진심으로 존경한다.



7. 삼국지
사람이 아닌 책을 스승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우습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삼국지를 통해 여러가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배웠다.
이 역사적인 고전에 빠져든 나는 삼국지의 배경지식에 대해 쌓아갔고

- 이는 '거시史'에 대해 배우는 시발점이 되었다.

'거시史'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연대를 암기 한다는 것이 아닌,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배운다는 것이다.

또한 KOEI사의 삼국지게임 때문에 프로그래밍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실제 프로그래밍을 시작한건 상당한 시간이 흐른 일이지만, 일종의 동경을 갖게 되었다.

이는
- 내 삶의 방향의 가장 큰 흐름을 결정짓는 계기가 되었다.

여담이지만 KOEI사의 삼국지 게임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역사학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도 나는 삼국지를 읽는다.

8. 이순신 장군
어린시절부터 이순신 장군에 대해 또래 다른 아이들처럼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차이점은, 부모님께서 관련 역사책을 많이 사주셨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였다.

그 덕분에 나는
- '미시史'에 대해 대해 배웠으며

인터넷이란 것을 처음 접하게 된 98년도?에 그동안 모아둔 자료들로
- 임진왜란에 대한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것으로 IT를 시작했다.

삼국지와 이순신 장군은 내가 지금의 길을 가게된 '거시적'인 방향을 잡게 만들어줬다.
지금은 많이 멀어졌지만, 조만간 현충사를 다시 한번 방문하고 싶다.


9. 정명근
중학교때 나는 다소 보수적이었고, 사춘기때 학생들이 누구나 그렇듯 고집불통이었다.
쓸데없는 자존심만 쎘었고,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 들일 줄 몰랐다.
그러던 중, 정명근이란 친구가 제주대학교 영재교육원 입학 면접시험때 했던 대답은 내게 대단한 충격을 주었다.

당시 문제는 "물에 절대로 섞이지 않는 액체가 있는데, 이를 물에 섞는 방법은 무엇인가"였는데, 정명근의 대답은 "그 액체를 녹일 수 있는 다른 액체를 찾아서 녹인 후에, 그 액체를 물에 섞으면 됩니다." 였다.

그 대답을 듣는 순간 겉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네'였지만, 내 내면에서는 전기적인 충격을 받은 것 처럼 찌릿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물체에 대한 여러가지 방법의 생각을 갖는 법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내게 처음으로
- 창의력을 가르쳐 준 스승인 정명근.

내 창의력의 시발점이 되어준 나의 스승이자 친구인
그를 내 TOP 9에 올린다.



10. 리스트에 올리지 못하거나, 기억하지 못한 스승분들
스승분들께 대단히 죄송하게도,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밝히지 못한 스승분들 계신다.

그 분들 중에는, 위 분들 처럼 '존경스러운 행동'으로 가르쳐 주신 분들도 있고, '
반면교사(反面敎師) '로 가르쳐 주신 스승분들도 계신다.

또한 내가 미쳐 기억하지 못한 다른 스승분들도 계신다.

존경스러운 행동으로 가르쳐 주신 스승분들이나,
반면교사로 가르쳐 주신 스승분들,

내가 미쳐 기억하지 못한 다른 스승분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서,
그분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표하며.

마지막 TOP 10은 비워둔다.




이 글을 작성하는데, 무려 2주 가까이 시간이 걸렸다.
내 기억 속의 모든 스승들을 더듬고, 그 분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었다.
또한 그 생각들 속에서 지금의 나와 비교하며 반성하는 것 역시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이제, 2주나 걸린 이 글을,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주신 스승분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하며,
그리고 이런 좋은 기회의 계기가된 MSP 제도에 감사하며 이만 줄이고자 한다.


- 따스한 봄 새벽 리윈군 -